올해 설의 궁중 연회는 여전히 현비가 도맡았다. 그녀는 나도 기획에 참여하라고 했지만, 나는 고개 끄덕이기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너무 주도면밀하고 완벽하니까! 그녀는 궁에서 누구와 누구의 사이가 좋지 않으니 가능한 한 함께 앉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누구누구가 지난번에 어떤 요리를 싫어하는 것 같았으니 이번에는 그들의 상에 올리지 말자는 것도 다 생각해 두었다. 그런데 내가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내가 별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녀가 부담스러워하며 말했다. “마마께서 계속 첩을 이렇게 보시면 첩은 실례를 무릅쓰고 마마를 껴안고 뺨을 주무를 거예요. 우리 마마 어쩜 이렇게 귀여우실까!”
후궁의 여자들은 다 귀엽다. 황상은 정말 행복할 거다!
섣달그믐날 밤은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었다. 황상은 나를 끌어안고 가장 윗자리에서 가무를 감상했다. 술을 마시며 내게 음식을 집어주었는데, 안색이 어두운 걸 보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다들 가무 추도회에라도 참석한 듯 무척 엄숙한 분위기였다.
다행히 현비가 건배사를 하자, 다들 잔을 들고 축하를 나누어 썰렁한 분위기는 깨어졌다. 숙비는 몰래 잠든 가락을 뒤로 가리고 자기도 멍하니 앉아 있었고, 덕비는 사황자에게 음식을 먹이며 무대 위의 공연을 보게 했다. 그와 비교되게 온 귀비는 아이를 볼 줄 몰랐다. 다섯째가 흥분해서 재잘대고 싶은 게 분명해 보이는데, 온 귀비는 억지로 아이를 품에 안고 자라며 토닥이고 있었다. 연회 내내 다섯째는 벗어나려 했지만 온 귀비의 품에 다시 안겨야 했다. 정말로 온 귀비를 덕비에게 보내 훈련받게 하고 싶었다.
나는…… 어, 순비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이 황상의 누이가 정말로 궁에서 홀로 지내는지 궁금했다. 한참을 보니…… 순비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설을 쇠면서 그녀는 삼황자를 데리고 와서도 내내 냉담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아이와 몇 마디를 나누지도 않았다. 삼황자는 가락보다 어리다. 설이 지나도 고작 여섯 살이다. 이 나이대 사내아이들은 장난기가 넘치는데, 저 아이는 얌전히 앉아서 주눅이 들어 고개도 들지 못했다. 순비는 병을 이유로 밖에 나오지 않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평소에 나도 저들 모자를 보는 경우가 드물었다. 지금 보니 삼황자는 확실히 늘 위축되어 있고, 말은커녕 사람을 잘 쳐다보지도 못했다.
어휴, 이런 일은 관여 못해. 못하고말고. 나는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나는 나와 내 아이들이나 잘 돌보면 된다. 남은 일은 인연에 따라야지. 나는 내 술잔을 채우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소류아, 네가 하루빨리 달관하기를.”
새해에는 황상도 뱉은 말을 꽤 지켰다. 그는 확실히 자주 나와 아이들 곁에서 지냈다. 장사에게 작은 활을 만들어 주었고, 장억의 머리를 땋아 주었으며, 나와 함께 바둑을 두고 금을 탔다. 입을 열 때마다 교교아라고 부르면서. 세월이 고요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삼황자가 만으로 여섯 살이 되자 황상은 내 숙부를 황자의 선생으로 낙점했다. 사황자와 오황자가 자라자 그 아이들도 자주 보러 갔다. 요비의 오공주 이야기를 하자면, 어린아이가 사람만 보면 웃고, 무서움도 안 타고 잘 울지도 않았다. 요비는 딸이라고 공주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녀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요비는 냉궁에 갇혀 있으니 누군가는 오공주를 키워야 했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오공주를 현비에게 주자고 말했다.
공주일 뿐이니 황상도 허락했다.
다음날 현비가 오공주를 안고 와,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일어났을 때는 눈시울이 붉었다.
오공주의 이름은 강락(康乐)이다. 이전에는 황상도 아이를 품에 안고 귀여워했지만, 그 생모의 일이 있은 뒤로 황상은 현비의 처소를 들를 때조차 잘 안아주지 않았다.
궁에서의 일상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숙비 마마의 새 요리를 맛보고, 온 귀비가 새로 지은 치마를 입고, 송 첩여의 이야기를 듣고, 현비와 함께 일을 논의하고, 아이를 가르치다 고민이 생기면 덕비를 찾아갔고, 게으름을 피울 때는 왕 미인에게 잠시 아이들을 봐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다.
그해 구월에 나는 또 회임하여 다음 해 칠월 초칠일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공교롭게도 선황후와 생일이 같았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 황상은 여전히 곁에 없었다. 어, 그는 심씨 성의 궁녀를 찾아갔다. 그 어린 궁녀는 특별한 데가 없었다. 다만 냉궁에 갇힌 요비처럼 한 쌍의 봉황안(双凤眼)을 가지고 있었다. 그 눈은 말을 할 줄 아는 것처럼 영기(靈氣)가 감돌았다.
내가 칠황자를 낳자 황상은 기뻐하며 장념(长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는 영침(迎枕)에 기대어 그가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보았다. 그가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교교아, 짐이 너와 아이들이 영원히 평안하도록 지켜줄 것이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다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네 기분이 좋다면 그걸로 됐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담담한 미소만 지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그는 내가 이렇게 웃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다.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내가 단정하게 그를 황상이라 부르며 절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내가 눈을 반쯤 내리뜨고 담담하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내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웃으며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내가 그의 손을 뿌리칠까 봐 두려워한다.
그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가 손을 움켜쥐며 또 뻔뻔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교교아, 웃어다오, 한 번만 웃어줘. 짐이 잘못했다. 짐이 잘못했으니 화내지 말거라……. 짐이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
나는 그에게 화풀이하기도 귀찮아 한숨을 쉬곤 이렇게 말했다. “황상께서 또 첩을 속이는 것이지요.”
그는 장념을 내 앞에 데려왔다. “아가, 네 어머니한테 얘기 좀 해주어라. 아비가 잘못했으니 다시는 안 그럴 거라고. 어머니한테 화내지 말라고 해주어라.”
태어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장념은 눈앞의 일을 이해하기엔 인생 경험이 부족했다. 한참 오오오 하며 옹알이를 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심가 궁녀는 수의에 봉해졌다. 무척 예의 바른 소녀였다. 문안을 올 때면 심지어 조금 겁먹은 것을 알아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궁 사람들이 총비의 최후를 여럿 보아 온 것을 어찌하랴. 허 덕비니, 진 귀비니, 요비니, 당시에는 총애를 듬뿍 받았지만, 지금은 하나같이 비참해졌다. 다들 뒤에서 총비가 되는 것은 불길하다 여기며, 심 수의에게 질투하는 마음도 별로 없었다.
물은 하루하루 흘러가고 꽃은 하루하루 졌다. 궁중에서의 세월은 길다면 아주 길고, 짧다면 몹시 짧다.
그 후 다섯 해 동안은 잘 지냈다. 나는 각 궁의 마마들과 즐겁게 놀았다.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열다섯이 된 가락은 드디어 둥글고 희고 통통한 계집아이 티를 벗었다. 키가 늘씬하게 컸다. 롱다리 미인인 숙비 마마보다 좀 더 컸다. 쾌활하고 웃음이 많은 성격은 숙비의 복제품인 냥 쏙 빼닮았다. 하지만 우리는 가락이 너무 말라서 어릴 때처럼 귀엽지 않다고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다. 숙비는 가락에게 하루 다섯 끼를 먹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열세 살이 된 삼황자 장천(长川)은 여전히 위축되어 있었다. 누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면 깜짝 놀라 펄쩍 뛸 것 같았다. 내가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답시고 질문을 하면, 그 애는 작은 소리로 우물쭈물 대답했다. 황상이 매번 시험하는 질문을 할 때마다 깜짝 놀라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황상은 당신이 너무 무시무시하게 생긴 것 아닌가 하는 의심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삼황자를 대하는 것에도 점점 더 인내심이 없어졌다.
사황자 장신(长慎)과 오황자 장회(长怀)는 아홉 살이 되어 우리 어머니들이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었다. 넷째는 말을 천금처럼 여기는 답답한 조롱박이었다. 엄숙하고 고지식한 모습이 내 셋째 숙부와 똑 닮았다. 나는 어렸을 때 셋째 숙부를 가장 무서워했다. 넷째가 매일 정색을 하고 공손하게 ‘모후를 뵙습니다’ 하고 인사를 올릴 때마다 허리가 절로 곧게 펴졌다. 친정 가족의 밥그릇을 깨뜨리는 일만 아니었다면 정말이지 황상에게 황자들의 선생을 바꿔 달라고 하고 싶었다.
다섯째는 넷째와 정반대였다. 생기기는 잘생겼는데 말이 정말이지 너! 무! 많! 았! 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송 첩여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자란지라, 매일 건들건들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도화안(桃花眼)으로는 손수건마저도 깊은 정을 담뿍 담아 바라보았다. 궁의 수많은 어린 궁녀들은 오전하(五殿下)라고 하면 얼굴부터 붉어졌다. 온 귀비는 다섯째가 못된 짓을 배울까 봐, 시중드는 이들을 전부 내시와 나이 든 어멈들로 바꾸었다. 하지만 며칠 안 가서 내시와 어멈들이 다섯째를 언급하면 우물쭈물 수줍어하는 것을 보고는 순간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다.
장사는 어려서부터 장난기가 있었는데 여덟 살이 되자 더 심해졌다. 이 망나니 녀석은 영리하기까지 해서 요상한 계략이 많고 주도면밀했다. 나이는 어려도 우두머리 큰형님 노릇을 좋아했는데, 이 녀석의 형들은 그걸 또 기꺼이 들어주었다. 소심한 삼황자도 장사를 따라 몰래 셋째 숙부의 찻잔에다 간장과 식초를 부었다. 다섯째는 보초를 서고, 넷째는 그걸 다 보고서도 숙부에게 아주 공손하게 차를 권했다. 붙잡힌 뒤에 장사는 의리 있게 형들 앞을 막아서며 황상에게 이렇게 말했다. “벌하시려면 절 벌하세요! 제 사람을 벌하는 건 안 돼요!”
녀석! 패기가 넘친다! 황상은 장사에게 사흘 내로 논어를 오십 번 베껴 써오라는 벌을 내렸다. 그 결과 형, 누나, 누이동생들 모두 장사를 위해 베껴 쓰기를 도와주었고, 이틀도 안 되어 필체가 각기 다른 논어 오십 권이 황상의 손에 넘어갔다. 황상은 즐겁게 웃으며 아이들을 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어머니들까지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말투에는 ‘처첩이 한 가족처럼 친하고 적서 모두 화목하니 짐은 치국과 제가(齐家)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인재’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숙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황상은 참 자신감이 있어. 일대 군왕이 되려면 다른 건 몰라도 이만한 자신감은 있어야 하는 게지!”
장억과 강락은 한 살 터울로, 두 소녀는 서로 잘 어울렸다. 강락은 성격이 좋다. 현비를 따라 어린 나이부터 일을 주도면밀하고 타당하게 처리하는 법을 배웠고, 주위 사람들도 잘 돌보았다. 아랫사람들도 전부 강락에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장억보다 한 살 어린데도 늘 장억을 달래어 사탕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지켜보았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요비를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비를 닮았더라면 황상도 항상 강락을 소홀히 하진 않았을 텐데.
나는 냉궁에 가서 요비를 본 적이 있다. 어쨌든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다들 가련한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요비는 황상에게 너무 심하게 속아 넘어갔다. 냉궁에 보내지자마자 미쳐버려서, 매일 찢어지는 목소리로 내게 일찍 죽으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궁인들에게 그녀를 잘 돌보고 너무 박대하지 말라 당부하고, 태의에게 규칙적으로 그녀를 진찰하라고 했을 뿐이다.
장억의 성격은 나를 닮았다. 부드럽고, 맹하고, 먹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보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장억은 아마 황상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일 것이다. 황상은 장억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이렇게 물어보았다. “작은 장억은 부황을 좋아하느냐?” 장억이 어리숙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상은 다시 물었다. “그럼 작은 장억은 계화탕우(桂花糖藕)*를 부황에게 주겠느냐?”
*桂花糖藕: 계화 설탕 소스로 절인 연근
먹을 것 이야기를 하자 장억은 순식간에 똑똑해졌다. “부황은 계화탕우가 좋아요?”
“그래.”
요 계집아이는 남은 계화탕우를 엄청 크게 한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 “그럼 부황의 작은 공주가 부황 대신 먹어드릴게요!”
황상은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는 장인에게 작은 계화탕우 모양으로 옥패를 만들게 하여 작은 장억에게 선물해 주었다.
장억이 득의양양하게 오라비에게 뽐내자, 장사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지금 온 궁에서 네가 계화탕우를 탐식하는 걸신쟁이 고양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어.”
오라버니의 이 말에 장억은 입을 삐죽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불쌍한 내 장념은 다섯 살에 정의의 심판을 주재해야 했다. “형은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누나 울지 마. 형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작은 장념은 정말이지 작은 천사가 따로 없다. 장념의 중재 하에 형과 누나는 장념을 껴안고 동생의 얼굴에 강아지처럼 입을 맞춰댔다. 세 아이는 내 침상에서 뒹굴다가 한 덩어리가 되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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