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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장류 宫墙柳

제1장 의외 意外

by 小曜 2023. 7. 19.

 

 

내가 입궁하게 된 것은 순전히 의외의 일이었다.

 

내 이름은 강영류(江映柳). 올해 열넷이고, 선비 집안 출신이다. 조부께선 현 조정의 태부이시고 조모께서는 성상의 고모할머니인 화양대장공주(华阳大长公主)이시다. 아버지와 숙부는 조정에서 관직을 지내고 계시며 오라비들은 어린 나이에 장래가 창창하다. 모로 보나 승승장구하며 상승기를 타고 있는 대가족이다.

 

이런 가족이라면 딸을 입궁시키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그저 내가 한 번도 그 대기 명단에 올라 있던 적이 없을 뿐. 내 인품이나 용모가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너무 멍청하다!

 

할머니께선 내가 당신을 닮았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심계가 없고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아이라고. 자매들이 시를 쓴다는 핑계로 서로 시샘하며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에도 나는 내가 쓴 시에 잘못 쓴 글자가 없는지 열심히 들이 파고 있었다.

 

“됐다, 소류아(小柳儿)가 열여섯이 되면 집안은 좀 떨어져도 열심히 노력하는 남편을 찾아주면 된다!”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나도 무척 만족했다. 그래서 총애 싸움 기술에 대해서는 완전히 관심이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은, 수녀 선발 전날 저녁 내 한 언니의 얼굴에 뾰루지가 나고, 또 다른 언니가 호수에 빠지는 바람에 내가 등 떠밀려 간택에 나가게 된 것이다.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한 채로 참석했고, 당연하게도 낙점되었다.

 

황상의 눈에 든 것은 내가 아니라 내 부형(父兄)이었다. 이 말은 늘 어딘가 이상하게 들린다.

 

나는 가세가 좋고 지위도 높다며, 미인(美人)에 봉해져 이화궁(怡华宫)의 난분각(兰芬阁)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화궁의 주인은 황상을 잠저 시절부터 모셔온, 삼공주의 생모 숙비(淑妃)마마이다. 스물다섯의 숙비는 대외적으로 다툼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삼궁육원(三宫六院) 제일의 투명인간이라 할 만했다. 대내적으로는…… 요리사다.

 

숙비께서는 요리하기를 좋아했다. 솜씨도 아주 좋았다. 그녀는 상식국의 여관이 되지 못한 데 깊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고, 잘 먹는 사람을 제일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숙비의 솜씨에 대한 진심 어린 찬사와 입궁 보름 만에 얼굴이 통통하게 둥글어지는 실천적인 행동으로 환심을 샀다.

 

사월 초하루, 입궁 한 달째 되는 날, 나는 숙비께 문안을 올리러 갔다. 숙비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내 친구인 삼공주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이가락(李嘉乐)! 밥 안 먹을래!”

 

삼공주는 다섯 살밖에 안 됐지만 이미 자기만의 심미적 기준이 있어, 더 이상 공처럼 뚱뚱해지지 않을 거라며 맹세했다. 공주가 내 뒤로 숨으며 소리쳤다. “미인 언니, 도와줘요! 모비가 미쳤어요!”

 

숙비는 냉소를 지으며 손을 비볐다. “이가락! 하나! 둘!”

 

어떤 아이든 부모가 제 이름을 통으로 부르며 숫자 세는 걸 무서워한다. 역시나 삼공주는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머금은 채 대추율무죽에 든 대추를 우적우적 씹었다. 힘을 너무 주고 씹다가 제 혀를 깨물었는데도 심장이 돌로 만들어진 사람 같은 숙비 마마의 무표정에 눈물만 그렁그렁 달고 계속 먹어야 했다.

 

나는 공주가 불쌍해서 옆에 앉아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숙비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소류아, 걘 내버려 두고 얼른 먹어라. 황후 마마께서 오늘 체후가 나아지셨다니 우리는 미앙궁(未央宫)에 문안 올리러 가야지.”

 

황후 마마께선 줄곧 편찮으셨던지라 간택에도 불참하셨다. 이번이 처음으로 황후를 뵙는 것이다.

 

성상께서 즉위한 지 4년, 궁에는 이미 많은 비빈들이 있었다. 진(陈) 귀비는 오만하고 횡포했고, 현비(贤妃)는 온화하고 대범하며, 순비(纯妃)는 말씀을 잘 하지 않는 분이었고, 온 소의(温昭仪)는 더욱 말이 없었고, 정 숙의(郑淑仪)는 가장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 외의 보림(宝林)과 어녀(御女)들이 가장 가련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나보다 궁에 들어온 지 오래되었지만, 내게 언니라 부르며 절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간택에 참여해 들어온 열 명 중에서도 이미 총애를 받아 승진한 이가 있고, 나처럼 여태 황상이 둥근지 납작한지조차 모르는 이도 있었다.

*전반적으로는 당나라 제도 가져온 거 같음. 4부인-귀비贵妃 숙비淑妃 현비贤妃 덕비德妃 / 9빈-소의昭仪 소용昭容 소원昭媛 수의修仪 수용修容 수원修媛 충의充仪 충용充容 충원充媛 / 27세부-첩여婕妤 미인美人 재인才人(각 9명) / 81어처-보림宝林 어녀御女 채녀采女(각 27명) / 양인良人은 북위에 있던 직위인데 그냥 가져다 썼나? 아무튼 어녀랑 비슷하게 제일 낮은 직위 쯤으로 보면 될 듯

 

황후 마마는 정말 예쁘시다. 하늘의 선녀 같다. 말씀은 부드럽고 온화했는데, 때때로 기침을 하시는 모습이 내 눈에도 안쓰러워 보였다. 대조적으로 자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트집을 잡는 진 귀비는 아주 불화했다.

 

숙비 마마께서는 진 귀비가 바보라고, 머리가 좋지 않다고 했다. 멍청하게도 황상을 좋아해서 황상의 여인들 모두와 척지고 궁에 무수한 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소류아, 절대로 걜 따라 하면 안 된다. 어디 좋아할 게 없어서 황상을 좋아해, 아픈 거 아니라니?”

 

난 속으로 숙비 마마는 참으로 지혜로운 분이라고 생각했다.

 

진 귀비는 정 숙의더러 여우 같은 것이라 욕한 뒤, 이제 막 시침을 거친 새 후궁 여섯 명을 훈계했다. 그리고는 아직 성총을 받지 못한 우리 다섯 명에게 화살을 돌렸다. “너희는 황상의 시중을 들기 위해 입궁한 게다! 그런데 입궁하고도 한 달이 되도록 황상을 뵙지도 못했으니 너흴 두어 무엇 하랴? 창피하지도 않으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창피할 것은 없었다. 세상에 황상을 뵌 적 없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죽네 사네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곁의 조 보림(赵宝林), 하 양인(何良人), 문 어녀(文御女), 주 어녀(周御女)는 전부 부끄러운 기색으로 눈물까지 흘리려 했다. 급해 죽겠네! 근데 눈물이 안 나오는 걸 어째! 하는 수 없이 고개만 숙인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데, 진 귀비는 날 놓아주지 않았다.

 

“강 미인, 너는 새로 들어온 후궁 중에 지위가 가장 높으니 모범을 보여야 할 것 아니냐! 어쩜 이리 쓸모가 없는지. 이화궁에서 입 다물 줄만 아는 조롱박 같은 누구를 배워선 안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나더러 서로를 배우지 말라고 한다. 악연이 따로 없다. 각각 사내와 여인으로 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천생연분이었을 텐데!

 

나와 숙비 마마가 합을 맞춘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황후 마마께서 말씀하셨다. “그만하면 됐네. 강 미인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 앞날이 창창하지. 새로 온 아우들 모두 분수만 잘 지키면 황상을 모실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네.”

 

진 귀비는 황후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대충 절을 올리고 먼저 나가버렸다.

 

이화궁으로 돌아오자 숙비 마마는 의자에 기대 누워 욕을 했다. “진채용(陈彩容), 이 멍청한 것이! 황상이 저랑 자게 하려면 황상을 찾아갈 것이지! 우리 트집을 잡아 뭣하냐고! 내가 황상 대신 저랑 자 주기라도 하랴?”

 

그리곤 내 멍한 얼굴을 보더니 다시 말투를 고치셨다. “소류아, 넌 착한 아이지. 절대로 바보처럼 굴면 안 된다. 황상을 좋아하면 좋은 끝을 보지 못할 거야. 황상도 우릴 좋아할 리 없고. 황후 마마를 보렴, 동궁 시절에 황상과 얼마나 금슬이 좋았어. 그런데 아이 셋 중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고, 황상은 여전히 새 수녀를 들이지 않던? 나도 마찬가지다. 그땐 총애 같은 것도 받았지. 아님 가락을 어찌 낳았겠어? 그런데 요 한 달 동안 황상이 날 보러 온 적이 있더니? 넌 선량하고 나이도 어리지.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난 널 내 딸 반, 동생 반쯤으로 생각한단다. 그러니 이런 말도 하는 거야. 훗날 네가 총애를 받게 되면, 총애를 다투든 다투지 않든 절대로 황상을 좋아해선 안 돼!”

 

나는 집에서 할머니께 애교를 부리듯 숙비 마마의 다리에 머리를 얹었다. 그리곤 총애받고 싶지 않다고, 마마와 함께 이화궁에서 지내며 작은 공주가 크는 걸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사월 초이튿날, 가락과 종일 그네를 만들었지만 완성하지 못했고, 진흙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얼룩고양이 꼴이 되어 둘 다 숙비 마마께 책 베껴 쓰는 벌을 받았다. 게다가 숙비 마마는 정색을 하시곤 내게 홍소 완자를 해주지 않겠다고 했다. 어제의 온정은 한바탕 꿈과 같으니 슬프도다!

 

사월 십일일, 오늘부터 나는 궁에서 유일하게 시침을 들지 않은 비빈이 되었다. 숙비 마마는 내가 슬퍼할까 봐 특별히 맛있는 요리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당신이 본 여자아이들 중에 내가 가장 사랑스럽다고 극찬하면서, 쓰레기 남자의 눈에 들지 않았다고 자신감을 잃지는 말라고 하셨다. 나는 즐겁게 식사를 하면서도 내일도 마마께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주길 바라며 애써 기분 나쁜 표정을 꾸며냈다.

 

사월 십이일, 문안을 마치고 황후 마마께서는 나와 숙비 마마를 미앙궁에 남겨두셨다.

 

황후 마마는 정말로 아름다운 분이었다. 부용 같은 얼굴에 버들잎 같은 눈썹, 날씬하고 연약한 자태, 웃을 때 피어나는 양 뺨의 보조개.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다 있을까! 나는 넋을 잃고 황후 마마를 바라보았다.

 

숙비 마마는 미앙궁에서도 이화궁에 있을 때처럼 편안히 다리를 꼬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다들 우리 사람이니 편하게 말하자고.”

 

황후 마마께서는 숙비의 머리에 손을 튕기시고는 나를 위로해 주셨다. 나는 어리고 예쁘게 생겼으니 조만간 총애를 받을 거라고, 절대로 터무니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남의 부추김에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건 더욱 안 될 일이라고.

 

나는 미인을 보느라 멍하니 있다가,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마는 정말 예쁘세요! 안심하세요, 저 안 그럴게요! 저 말 잘 들어요!”

 

황후 마마는 눈을 휘면서 내 뺨을 만지셨다. “어쩐지 아유(阿柔)가 널 좋아하더라니.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구나.”

 

숙비 마마가 날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 귀염둥이는 내 거야. 뺏어 가면 안 돼. 그건 그렇고 요요(瑶瑶), 황상은 우리 소류아를 미인으로 봉해 놓고 왜 부르질 않아?”

 

황후 마마께서 목소리를 낮추고 내게 물으셨다. “소류아, 너희 집에서는 너희 두 언니들이 이름난 재녀가 아니니? 어째 입궁은 네가 하게 된 거니?”

 

내가 이유를 고하자 황후 마마께서 탄식하셨다. “연고가 여기 있었어. 황상은 너희 집안의 딸 하나를 비로 들일 생각이셨는데, 하필 너희 집에서 이름난 딸 둘이 아니라 겨우 열넷 먹은 어린아이인 널 보낸 거야. 황상께서는 너희 집이 황가가 눈에 차지 않아 핑계를 댄 거라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널 멀리하는 거지.”

 

숙비는 그 말에 비웃음을 지었다. “흥, 옹졸하긴!”

 

나는 황상이 이 때문에 조부와 가족들을 벌할까 봐 겁이 났는데 황후 마마께서 위로해 주셨다. “괜찮다. 강 태부는 항상 신중하고 성실했으니 황상도 이런 일로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거란다. 그냥 훈계하는 셈이지. 며칠 지나면 널 부르실 거야.”

 

“……안 불려갈 방법은 없을까요?”

 

황후 마마는 깔깔 웃으며 숙비에게 손가락질을 하셨다. “너 어린 아가씨한테 무슨 헛소리를 한 거야!”

 

숙비가 말했다. “헛소리 안 했어. 이 애가 그때 너랑 좀 닮은 거 같아서. 난 얘가 너처럼 되는 건 바라지 않아.”

 

그 말에 황후 마마께서는 웃음을 멈추고 한참 고민에 빠져 내가 어색해질 때까지 쳐다보시다가 말씀하셨다. “겉이 닮은 건 아닌데……, 성격은 정말 그러네…….” 그리고는 기침을 하셨다.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황후께서도 나 같았다니? 하지만 지금 황후는 나와 전혀 닮지 않으셨다. 황후 마마는 무척 연약하고, 눈매에는 우울함이 감돌았다. 분명 늘 미소를 짓고 계시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늘 슬퍼 보여서 뭐라도 해서 마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사월 보름, 황후 마마께서 좀 나아지셨으니 나와 숙비와 삼공주에게 미앙궁으로 식사하러 오라고 하셨다. 도착했을 때 우리는 유난히 과묵한 온 소의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온 소의는 수를 놓고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고 눈꺼풀만 치켜들며 숙비 마마에게 말했다. “연잎떡 먹고 싶어. 요요한테는 철갑상어 국을 해주고. 얼른 주방 가서 밥해.”

 

숙비…… 숙비 마마가 대꾸했다. “밥은 해줄 수 있는데, 그럼 너 벽걸이 하나만 만들어 줘. 두 달 있으면 황제놈 생일인데 뭘 줘야 할지 모르겠어.”

 

온 소의는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퉤, 내가 만든 게 그 자식한테 어울리기나 해? 어쨌든 망가진 수가 두 점 있어. 나중에 사람 시켜서 좀 고친 뒤에 보내던가!”

 

숙비 마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렇게나 고치면 돼. 내가 보낸 건 황제놈은 보지도 않을 테니까.”

 

황후 마마는 불안해했다. “많이 망가졌어? 남들이 눈치채면 안 돼.”

 

온 소의는 자부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망친 자수는 남들이 잘 놓은 것 보다 열 배는 나아! 황제놈한테 주다니, 그놈 좋을 일만 하는 거지.”

 

이제야 황후 마마께서 방 안에 시중드는 사람을 안 두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대화가 남들 귀에 들어갔다가는 사고가 나기 쉽다.

 

숙비 마마는 요리를 하러 갔고, 황후 마마는 삼공주를 안아 어르고, 온 소의는 나와 인사도 나누지 않았는데 치수부터 재기 시작했다. “아유가 네게 밥을 해주니까 나도 너한테 새 치마를 만들어 줄게. 아유의 밥을 먹고 내 치마를 입으면 우리는 한편이야.”

 

나는 이렇게 고위층에 진입해 그 작은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정말이지 기쁘고 축하할만한 일이었다.

 

숙비는 황후 마마의 안색이 좀 좋아지신 것을 보고 기뻤던지, 그날 요리도 유난히 맛있었다. 연잎떡과 철갑상어 죽 외에도 거위 물갈퀴와 오리 혀로 만든 아장압신(鹅掌鸭信), 절인 돼지고기 요리인 화퇴돈주자(火腿炖肘子), 닭 골수와 죽순으로 만든 계수순(鸡髓笋), 산약 튀김, 새우 완자, 닭국 등등이 있었다. 나와 삼공주는 고개를 들 겨를도 없이 열심히 먹었고, 온 소의도 음식을 입에 넣고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칭찬했다. “아유, 넌 다른 건 몰라도 요리는 참 잘해.”

*홍루몽에 나오는 고오급 요리들이라고 함

 

황후 마마는 모든 요리를 조금씩 드셨고, 특별히 주문한 철갑상어 죽은 한 그릇만 드셨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우리를 보며 웃으셨다. 숙비는 멥쌀로 만든 죽 반 그릇만 더 먹으라며 권했다.

 

식사를 마치고 황후 마마는 삼공주의 손을 잡고 소화를 위해 두 바퀴쯤 거니셨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황후 마마를 숙비와 온 소의가 부축해 침전으로 모셨고, 직접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는 궁인에게 황후 마마께서 매일 몇 시에 주무시는지, 몇 시에 기침하시는지, 밤에는 몇 번이나 깨시는지, 매일 얼마나 드시는지 자세히 물었다. 질문을 할수록 두 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황후 마마의 휴식을 방해할까 봐 온 소의는 우리와 함께 이화궁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숙비는 한숨을 쉬었다. “이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적게 먹고 적게 자니 요요의 병이 어떻게 낫겠어!”

 

온 소의도 탄식했다. “요요 언니는 마음의 병에 걸린 거야.”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온 소의의 명화궁(明华宫)에서 장사고고(掌事姑姑)*가 오더니, 수심에 찬 얼굴로 아뢰었다. “마마, 황상께서 시침 들라는 명을 내리셨어요.”

*姑姑: 고모나 손위여자를 높여 부르는 경칭인데 상궁을 고고라고 칭하기도 했음. 掌事姑姑는 한 궁마다 배정되어서 궁녀들을 통솔하는 상궁인데 정5품쯤 된다고 함.(확실x)

 

온 소의의 낯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요요 언니에게 줄 말액에 학 다리 두 개만 더 놓으면 완성인데! 오늘 저녁에 끝내서 내일 미앙궁에 가져다주려 했더니만! 황제놈은 왜 하는 짓마다 사람 짜증 나게 하는 건데!”

 

명화궁의 장사고고는 곧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마마, 그런 말씀은 제발 속으로만 하시어요! 숙비 마마 처소야 다른 사람이 없으니 망정이지요. 오늘 밤은 좀 참으시고, 절대로 황상을 거역하지 마세요!”

 

숙비가 동정을 담아 한참을 달래고 나서야 온 소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났다. 숙비 마마는 불쌍한 온 소의를 위해 내일 달콤한 우유찜(糖蒸酥酪)을 해줘야겠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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