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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장류 宫墙柳

제18장 시집 장가 嫁娶

by 小曜 2023. 7. 19.

 

 

솔직히 말해서 나는 두 아이의 혼인에 무척 신경을 쓰긴 했지만, 어머니들이란 아이들이 이미 다 자랐다는 걸 기억하기 어려워하기 마련이다. 장사가 지금은 나보다 훨씬 키가 크고 황상보다도 좀 더 크고, 행동거지도 아주 침착하고 노련하지만, 늘 그 애를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탕을 많이 먹고 이가 아파 내 앞에서 입을 쩍 벌리고 울던 어린아이였는데! 싶었다.

 

장억은 더 그랬다. 이 아이는 나를 참 많이 닮았다. 매일 생글생글 허허허 웃고 다닌다. 다들 장억을 총애하고, 강락과 장념마저도 장억에게 이야기할 때는 아이 어르듯 한다. 황상은 끝도 없이 총애를 퍼부었다. 좋은 물건은 다 장억에게 주는 건 차치하고, 말끝마다 ‘짐의 작은 공주’라고 불렀다. 며칠 전에 내가 수를 놓을 줄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원앙을 오리처럼 놓는 것도 많이 발전한 셈이라고 하자, 황상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작은 공주는 아직 어리잖아. 좀 더 커서 가르쳐도 늦지 않다.”

 

좀 더 크면 네 작은 공주는 엄청 큰 공주가 될 거라고요. 큰 공주보다 더 큰 공주요. (再等你的小公主就变成太公主了,比大还要多一点)

 

두 아이의 혼사를 일정에 추가했더니 나와 황상은 개처럼 피곤해졌다. 고개를 돌려 장념을 보니, 삼 년 후쯤 또 한 번 피곤해지겠다는 생각에 이 형제자매를 다 내버리고 알아서 짝을 찾아오라고 하고 싶었다.

 

장사는 저군(储君)이니 그 혼사는 아주 중요했다. 황상은 조정 대신들을 거르고 또 거르고 또 걸렀다. 미래 태자비의 친정은 높은 가문이어야 한다. 충분히 높지 않으면 후궁을 진압하기에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세력이 너무 크면 외척의 권세가 군왕을 제압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덕과 재주까지 겸비한 적령기의 여자를 골라, 마지막으로 장사에게 하나를 뽑도록 했다.

 

사실 내 친정집은 이 기준에 부합했다. 백부는 이품 중서령(中书令)이고 숙부는 태자소부(太子少傅)이며, 아버지는 예주의 지주이고, 형제들 역시 각 지방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세가라 할 수는 없지만 기반은 탄탄했다. 가족 중 조카딸 몇몇의 나이가 적당했다. 집에서 내게 말을 안 넣은 것도 아니다. 문무를 쌍으로 겸비하지 못해 전반생은 부모에게 빌붙어 살고 후반생은 딸에게 빌붙으려는 내 오라비가 말이다. 하지만 내 머리는 멀쩡했다. 그렇게 많은 이전의 교훈을 보아 왔는걸. 내가 감히 질녀를 추천했다면 황상은 나를 제2의 인화태후로 여기고 제거해 버릴 것이다.

 

사실 황상이 가락을 아근에게 하가시킬 때부터 나는 황상이 미래 황후는 강씨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 결정했음을 알고 있었다. 이번 세대에 강씨의 지위는 이쯤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다음 세대 자제들의 능력과 장사의 마음을 보아야 할 것이다.

 

태자의 혼사는 집안일이 아니라 국사이다. 그러니 태자비를 뽑는 일은 나와 큰 관계가 없었다.

 

이런 식의 선택법은 고부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황상의 여자 보는 수준은 온 귀비가 아이 돌보는 수준보다 나쁘다. 황상이 잘생기지도 않고 막무가내인 태자비를 뽑을까 봐 걱정이었다. 나더러 돈도 안 주고 아이를 키워달라면서 또 뒤에선 울고불고하며 내가 아이를 뺏어갔다고 하는 태자비가 들어오면 어쩌지.

 

황상이 태자비를 뽑는 기간 내내 나는 며느리 공포증에 걸린 것처럼 초조해했다. 이런 걱정거리를 온 귀비에게 이야기하자, 온 귀비는 언제나처럼 신기하게 논점에서 벗어났다. “그럼 태자비가 예쁘지만 막무가내인 사람이면 어쩔래?”

 

“어……, 생기기도 예쁘게 생겼는데 뭐……, 예쁜 사람이 막무가내인 건 별일 아니에요, 그쵸? 화가 나도 얼굴 보면 다 풀릴 텐데, 그쵸…….”

 

덕비: “왜 제 말투 따라하세요!”

 

“자네하고 며느리 사이가 좋으니까! 난 다각도로 모든 면에서 자넬 따라 할 거야!”

 

덕비: “쯧쯧쯧, 우리 넷째 며느리는…….”

 

“사랑스럽고 귀엽고 어쩌고 우리도 다 알거든……. 아, 생각났다. 차라리 자네 침상에서 한번 뒹구는 게 낫겠어. 자네 복을 좀 받아서 운이 더해지면 자네처럼 시어머니가 만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며느리를 얻겠지.”

 

하지만 내가 길일을 골라 덕비의 침상에서 굴러보기도 전에 황상이 태자비 후보 명단을 내밀었다.

 

황상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세 집안은 다음과 같다.

 

좌상의 손녀, 즉 온 귀비의 친정 조카딸이다. 온 대인은 황상이 즉위했을 때부터 황상의 노선을 수십 년간 견지해왔다. 국고에 쌓인 돈의 절반은 그가 호부상서로 있을 때 모아둔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온 귀비가 후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의 자수 예술에만 몰두하면서도 공으로 아들 하나를 둔 사비의 우두머리가 된 것만 보아도 온 대인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충성을 다했는지 알 수 있다.

 

표기대장군(骠骑大将军) 한(韩) 장군의 장녀. 이 한 장군은 한미한 출신으로, 초년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황상이 혜안으로 영웅을 알아보고 그를 발탁해주었다. 임 대장군이 전사한 뒤로 조정의 대장군 직은 쭉 비어 있었다. 도성 근교의 병영을 통솔하는 한 장군은 조용히 황상의 가장 측근 병력이 되었다.

 

마지막은 그야말로 수를 채우기 위해 올린 집이었다. 선평후(宣平侯)의 막내 적녀이다. 선평후 조가(赵家)는 원래 대대로 고관대작 집안이었다. 조 후야(侯爷) 본인도 뛰어난 사람이라 일찍이 황상의 반독(伴读)*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 후에 심 노승상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고 심가가 귀향하자, 선평후도 관직을 그만두고 십 수 년을 한가로이 집에서 지냈다. 선평후 부인의 성이 심씨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황후의 동생이었다.

*伴读: 공부 친구, 배동(陪童) 비슷한...

 

임 노장군이 전사하고 남양후가 반역으로 주살되자, 황상은 옛정이 그리워진 건지 심씨 일맥의 옛사람을 기용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선평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선평후는 십여 년을 한가롭게 지내며 매일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다가 갑자기 새벽부터 조회에 나가야 하니 온몸이 안 좋아졌다. 그는 열심히 황상에게 아들 몇을 팔아야 했다. 그래도 그 아들은 확실히 훌륭했다. 세자는 형부시랑을 맡고, 과거에 합격한 둘째는 어사대에서도 꽤 출중했다. 셋째는 이제 막 합격한 진사였으며, 막내아들은 공부를 곧잘 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쨌든 선평후가 온가나 한가보다는 못하다는 걸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평후의 막내딸이 뽑히길 바랐다. 다름이 아니라 내 아들이 선황후의 조카딸과 혼사를 맺는다니, 하늘이 내린 인연이 아닌가!

 

하지만 생각만 할 뿐이었다. 내가 아내를 들이는 것도 아니고…….

 

황상이 장사에게 명단을 보여주자 장사는 선평후의 막내딸을 선택했다.

 

역시 내 아들! 안목이 있네, 안목이 있어!

 

황상은 한참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선택도…… 안 되는 건 아니다. 젊은이라는 게지. 짐이 네게 그려준 길을 완전히 따라서 걷지 않겠다고 해도 짐이 상관할 수는 없지. 하지만 온당함을 따져야 하니, 조씨가 동궁에 들고 석 달이 지난 뒤에 다른 둘을 양제로 들이면 될 것이다.”

 

황상, 며느리가 들어오기도 전에 아들에게 첩을 붙여주다니요. 그, 그, 그 대본을 잘못 받으신 거 아녜요! 그건 제 대본이라고요! 송 소의의 화본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건 전부 못된 시어머니들이라고요!

 

장사는 공손히 대답했다. “예.”

 

황상이 다시 물었다. “왜 조가를 선택했느냐?”

 

장사가 대답을 하려는데 황상이 손을 흔들며 막았다. “됐다. 의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강산은 네 것이 될 텐데. 제왕이 되는 이는 누구에게도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교교아, 눈 깜짝할 새에 우리 아들도 장가를 드는구나.”

 

그들 부자는 아주 닮았다. 황상은 항상 내색하지 않고 생각을 드러내지 않지만, 장사는 아무리 진중하고 노련하대도 아직은 소년의 날카로움을 띠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란히 선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곧고 훤칠하고, 한 사람은 귀밑머리가 서리처럼 세었다. 마치 한 사람의 일생을 한눈에 보는 듯했다.

 

장사는 치국의 도리를 고려하여 조가의 아가씨를 선택했겠지만, 나는 그다지 원치 않았다. ——내 아들이 제왕이 되는 것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의외의 일이었다. 제왕은 남쪽을 향해 앉아 고(孤)라 자칭한다.* 하지만 나는 내 아들이 냉담하고 마음에 걸릴 것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이기보다는, 마음에 담은 여자와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 조가 아가씨가 장사의 마음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나는……, 그 아가씨가 심궁에 드는 운명을 내가 막을 수는 없지만, 만약 장사가 그녀를 괴롭힌다면 황천길에서 무슨 면목으로 고인을 만나겠는가.

*面南称孤: 《장자-도척(庄子-盗跖)》

 

사석에서 우리 두 모자만 있을 때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가가(嘉嘉), 넌 어떤 여자아이가 좋니?”

 

장사는 항상 침착한 아이였는데, 내 질문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이상하다 싶어 떠보듯 물어보았다. “……너 혹시 심중에 둔 사람이 있는 거 아니니? 어머니한테 말해줄 수 있어?”

 

늘 애늙은이 같던 녀석이 내 무릎 위에 푹 엎어지더니 바보처럼 푸하하하하하하하 웃었다.

 

얘, 얘, 얘가…… 미친 건가?

 

녀석은 충분히 웃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완완(婉婉)은 착하고 사랑스러워요. 입궁해서 어머니도 직접 보시면 알 거예요.”

 

완완? 입궁?

 

“나이가 어려서 예의가 완벽하진 않지만, 어머니가 관대히 보아 넘겨주세요. 하지만 정말 착해요. 제기도 잘 차고요. 소자가 태자비 되는 법을 잘 가르쳐 줄 거예요…….”

 

뭐야…… 대단한 녀석이잖아……. 이거이거이거 진짜 송 소의가 쓴 낭만애정화본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니고?

 

장사는 너무 오래 도둑 즐거움을 맛봤다. 한참을 다른 사람과 기쁨을 나누지 못해 답답했던지라 내가 속임수를 쓸 필요도 없이 알아서 제 정인의 칭찬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다섯째 형의 왕부가 지어진 뒤에 제가 가끔 순왕부에 들렀잖아요……. 정말 가끔이었어요. 다섯째 형은 궁 밖에 친구가 많거든요. 형이 사귀지 못하는 친구는 없어요. 다들 형을 이가 다섯째 형(李五哥)이라고 부른다고요……. 어쨌든 형이랑 선평후네 이공자, 한 장군네 큰 도령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사이가 좋거든요, 심지어 저보다 더 좋아요! 선평후 이공자가 어사대로 가는 것도 제가 내어준 생각이었어요……. 조가 둘째 형은 빈정대고 비꼬는 데 조예가 아주 깊어요…….”

 

“다들 친해지고 나서는, 다 그렇잖아요, 다 형제지. 언젠가 한 번 조가 둘째 형에게 술 마시러 나오라고 했는데, 누이동생이랑 연을 날려야 한다는 거예요. 근데, 그, 다섯째 형이 어떤지는 어머니도 아시죠! 굳이 저를 끌고 한번 보러 가자고……. 그때 완완은 열 넷도 안 됐는데 벌써 엄청 예뻤어요. 욕도 엄청 잘 하고. 우리더러 몰래 엿보는 짓은 군자의 소행이 아니라 그랬죠. 맞는 말이잖아요…….”

 

도대체 그게 뭐가 좋다는 건지…… 얘 두개골을 꺼내 뇌가 아직 잘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나중에 몇 번 더 마주쳤어요……. 딱 한두 번이에요. 제가 예를 어기고 괜히 말을 붙였어요. 부처님께 절하러 대상국사에 갔을 때에요. 근데 완완은 무척 예의를 따져서, 매번 저를 욕하고 가버렸어요. 정말이에요. 완완은 정말 예의 발라요…….”

 

나는 흥미로움에 입을 떡 벌렸다. 내 아들이 이런 바보 개일 줄은 전혀 몰랐다. 남의 집 아가씨한테 욕을 먹고도 허허거리면서 앞뒤 분간도 못 하다니. 아니 근데, 욕…… 욕을 했다고…….

 

“장사, 그 아가씨도 널 좋아하는 게 확실하니? 매번 욕을 했다며!”

 

장사는 조급해하며 대꾸했다. “어떻게 절 안 좋아해요! 저 벌써 조가 둘째 형한테 몇 번이나 얻어맞았거든요! 갈비뼈가 아직 아파요! 작년 상원절에 눈이 엄청나게 왔었는데, 제가 그 집 후원 담벼락에서 떨어질 뻔도 했다고요! 어떻게 절 안 좋아해요! 부황이 온가, 한가와 함께 조가도 고려하시도록 제가 얼마나 애를 썼는데요! 근데 어떻게 절 안 좋아해요!!!!!!”

 

나는 아연실소를 했다. 지금 얘 표정은 세 살 때 내가 사탕을 못 먹게 했을 때랑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일부러 장사를 놀렸다. “그럼 그 애가 정말 널 안 좋아하면 어쩔래?”

 

장사는 마침내 제가 어쨌든 태자라는 것을 떠올렸다. “몰라요. 어쨌든 사혼(赐婚)* 성지는 이미 내려갔으니 저한테 시집 안 올 수도 없어요! 절 안 좋아해도 괜찮아요. 아직 어리잖아요. 열여섯 살짜리 어린 아가씨가 좋아하는 게 뭔지 뭘 알겠어요. 제가 열심히 총애할 거예요.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총애할 거예요! 설마 그러는데도 안 좋아하겠어요?”

*赐婚: 황제가 하사하는 혼인

 

십 년, 이십 년? 군왕의 애정이 정말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이어질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네가 오늘 한 말을 기억하거라. 훗날 그 애를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도 오늘 했던 말을 기억해서 그 아이를 못살게 굴어서는 안 된다. 안 그럼 내 아들이라고 말도 하지 말거라.”

 

황상과 태자의 재촉 속에 예부가 길일을 택했다. 장사의 혼례 준비 때문에 궁중은 지친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 황상은 한 장군의 장자를 장억의 부마로 택했다는 성지를 내렸다.

 

황상은 어디까지나 황상이었다. 온 승상의 덕망이 높긴 하지만 어쨌든 나이가 들었고, 그 자제들도 관리로 있긴 하지만 자질이 좀 평범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온가의 미래도 그저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 장군은 한창 장년이고 그 장자도 뛰어났다. 한 소장군을 장억에게 맺어주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든 장억을 위해서든 타당한 선택이었다.

 

다섯째와 장사는 친한 형제가 저희 누이동생을 맞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연합하여 그를 한 대씩 때려주었다. 그런 뒤, 내게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형제가 미래의 매제 앞에서 여동생을 마치 구중천에서 내려온 선녀인 것 마냥 자랑해댄 덕에, 한 소장군은 밤에 잠도 못 이룬다고, 이대로 장억을 만나지 못한다면 혼인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상사병 말기에 걸릴 거라고 했다. 나는 장억을 쳐다보았다. 그 애는 왕 첩여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왕 마마, 마마의 귀염둥이가 팔보 오리랑 게살 넣은 만두탕이 먹고 싶어요…….”

 

나는 딸의 아명을 불렀다. “낙락, 황상이 네게 맺어준 부마를 만나고 싶으니?”

 

장억의 대답은 훌륭했다. “먹고 나서 만나도 될까요?”

 

“…… 낙락, 이리 와보렴. 네가 스스로 부마를 선택할 수 있다면 한 소장군 같은 사람을 선택할 거야?”

 

“당연히 아니죠! 제가 좋아하는 남자는 무이랑이라고요! 셋째 언니가 무이랑은 호랑이를 때려잡을 수 있는 세상 제일가는 영웅이래요!”

 

젠장, 가락 저는 아근이랑 애도 서넛을 낳았으면서 아직도 장억에게 무이랑 얘기 같은 걸 해주다니!

 

장사가 말했다. “한 소장군이 무이랑은 아니지만, 무공이 대단하고 꽤 용맹해!”

 

매제 앞에선 누이를 칭찬하고 누이 앞에선 매제를 칭찬하고. 장사는 인간계 월하가 따로 없다. 이런 애한테 태자를 시키는 건 그야말로 인재를 낭비하는 짓이다. 아무래도 중매쟁이를 시키는 게 맞다.

 

내 아이가 눈이 가려진 채 흐리멍덩하게 남의 아내가 되는 꼴은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던지라 나는 두 녀석을 만나게 해주었다.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꾸며냈지만, 이건 궁에서 처음 있는 선자리란 말이다! 어떻게 담담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해바라기 씨를 챙겨서 온 귀비, 덕비, 송 소의, 왕 첩여를 이끌고 몰래 담 모퉁이에서 엿보았다.

 

한 소장군은 확실히 위풍당당하고 영준하며 씩씩했다. 장억을 보더니 얼굴이 빨개져서, 그 애랑 한참을 마주 앉아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공주, 신 한탁(韩卓)은 올해 스물넷으로 가세가 청백하고, 집도 말도 있고, 아직 혼인하지 않았으며, 첩을 들이지 않았고, 기방에 들락거리지 않았습니다! 신은 공주께서 배필을 고르시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이 개막사는 다섯째 그 망나니 녀석이 가르친 게 틀림없다! 장억은 이 사람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장억이 눈꼬리를 휘며 웃더니 물었다. “오라버니가 자네 무공이 뛰어나다고 했네. 무이랑보다 뛰어나다고. 그게 사실인가?”

 

“……어, 대결해 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신은 어려서부터 무예를 단련해 왔고, 지금껏 삼공주의 부마인 우림군 중랑장 강 대인에게 비긴 것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에게 진 적이 없습니다.”

 

장억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아근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락 앞에서 아근은 늙은 암탉처럼 다정하게 굴었고, 매일 가락이 추울까 더울까 배고플까 피곤할까 걱정하며 긴장하고 살았다. 장억이 아니라 우리도 아근에게 무슨 영웅 같은 업적이 있었는지 떠올리기 힘들었다. 장억은 한참을 생각하다 물었다. “그럼 호랑이를 때려잡을 수 있나? 경양강(景阳冈)에 눈꼬리가 휙 올라가고 이마가 하얀 크고 늙은 호랑이가 있다던데.”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을 잡아먹는 그런 호랑이 말이야.”

 

이전에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나는 장억이 일부러 맞선 상대를 겁주어 쫓아내, 계속해서 궁에서 먹고 마시며 빈둥댈 목적을 달성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

 

“신이 호랑이를 잡아본 적은 없지만 이리는 잡아봤습니다. 이리 한 떼를요. 그 녀석들도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한탁은 아주 성실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호랑이를 잡아 공주께 바치겠습니다.”

 

장억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기뻐하며 한탁에게로 깡충깡충 달려갔다. “날 데리고 가 줘!”

 

좋지. 널 데려가 달라고 해. 아득한 하늘 끝까지, 저 멀리 땅 끝까지. 변경 밖이든 강남이든, 어디로든 가 봐! 어디로든!

 

두 아이의 혼사를 같은 해에 치르느라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 남매가 하나는 바보처럼, 다른 하나도 바보처럼 헤벌쭉 웃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일찍 치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더 늦었다가 저 애들이 더 이상 바보가 아니게 되었을 때 치르려 했다면 난 미쳐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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