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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 东宫

태액부용미앙류 太液芙蓉未央柳

by 小曜 2022. 7. 13.

 

백거이 장한가

归来池苑皆依旧,太液芙蓉未央柳。

芙蓉如面柳如眉,对此如何不泪垂。
돌아와 보니 지원(池苑)은 예전 모습 그대로이고, 태액지의 부용화가 시들지 않은 푸른 버들을 비추고 있구나. 

부용화 같은 얼굴에 버들잎 같은 눈썹, 이 어찌 눈물 흘리지 아니하리오.

 

 

 

 

"아목(阿穆)!" 나는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다가 다시 호칭을 바꾸어 조용히 말했다. "전하……."

아목은 고개를 들어 망연히 나를 보았다. 그는 평복을 입고 있었는데, 흰색의 옷이 그의 검은 눈동자를 더 돋보이게 했다. 그의 표정에는 아직 어린애 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궁의 규칙에 따라 나는 태자의 유명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하지만 입궁하던 때에 나는 7살이었고 아목은 나보다 어린 5살이었다. 우리는 형제처럼 지냈다. 아목보다 나이가 많은 나는 늘 그를 보호하려고 했다. 아목이 책을 외우지 못했을 때 나는 태부의 눈앞에서 그를 위해 속임수를 썼다. 아목이 벌을 받을 때 나는 아목 대신 두꺼운 습자본을 들키지 않게 써 주었다. 우리는 함께 어화원에서 새총을 쏘고, 귀뚜라미 시합을 하고, 나무를 타고, 착실하게 제 할 일을 하던 궁녀들을 놀렸다…….

우리는 점차 자랐지만 우리 사이의 교분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목은 걱정거리가 있으면 늘 나에게 알려주었고, 나는 그를 위해 온갖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목의 걱정거리는 아주 많았다. 폐하께는 아들이 아목 하나뿐이어서 자연히 큰 기대를 하셨다. 하지만 폐하처럼 영명하신 황제 앞에서는 누구든 평범하기 그지없어지고 만다.

아목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부황처럼 될 수 있을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폐하께서는 전쟁에 능하시어 서역을 정벌하셨고 남이를 평정하셨으며, 크고 작은 성들을 무수히 공격하여 만세에 전해질 업적을 이루셨다. 황조감여도(皇朝堪舆图) 앞에 서면 누구든 피가 끓어 오를 것이다. 개국 백여 년 이래 우리 왕조의 강역이 이렇게 광대한 적이 없었다. 매년 조공할 때면 만국이 조정을 방문하고 수많은 이족이 귀화한다. 나는 아목과 함께 폐하를 따라 승천문 위에 서서 만세를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외침은 구성을 울렸다. 우리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도 그 기세의 우렁참을 느끼고 피가 끓었는데, 폐하께서는 미소 한 번 짓는 것에도 인색하셨다. 그분은 늘 성루 위에 잠깐 서 계시기만 했고 조금도 더 머무르려 하지 않으셨다. 금방 발을 내리라고 하신 뒤, 곧장 태극궁(西内)으로 돌아가셨다. 마치 이 세상 모든 번화가 군왕의 오만하고 냉담한 눈에는 그저 구름과 연기에 불과한 듯했다.

이런 부황이 계시니, 나는 아목도 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폐하께서는 궁술과 마술에 능하셨다. 우리 왕조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기 때문에, 귀족 집안 자제들의 교육에서 마술과 궁술 계몽이 우선이었고, 문과 공부는 그 다음이었다. 아버지가 직접 가르치신 덕에 사족 자제들 중에서 내 솜씨는 제법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폐하와 비교하면 십만 팔천 리는 떨어졌다.

나는 폐하께서 직접 나서시는 걸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날 나와 아목은 폐하와 함께 화원을 걷고 있었고, 나뭇가지 위에서 새 한 쌍이 즐겁게 노래하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아목의 손에 들려 있던 새총을 가져가시더니, 금환(金丸)을 하나 집어들고 그 새 한 쌍을 맞추셨다. 일석이조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금환 하나로 새 두 마리의 머리를 피와 살이 섞여 으스러지고, 거의 가루가 될 지경으로 만들었다. 폐하의 힘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폐하께선 쌍을 이루는 물건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역대 왕조에서는 궁중 태액지에서 병체련(并蒂莲, 한 줄기에 나란히 피는 한 쌍의 연꽃)이 피면 모두들 길조라 여겼고, 한림학사를 불러 글을 짓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흠화 2년, 태액지에서 병체련이 피었지만, 감히 폐하께 아뢰는 사람은 없었다. 왕 내시는 대담하게도 사람을 시켜 조용히 그 연꽃을 꺾어버리라고 했다.

폐하의 기괴한 성격 때문에 서원을 지을 때 곁채의 칸도 홀수로 지었다. 공부시랑 장렴은 아주 조심스러운 사람이지만 이 일에서는 무척 대담했다. 예부는 이 일이 조상의 법도에 어긋난다 여기긴 했지만, 어쨌든 서원은 황가의 원림이고 정식 궁실이라 할 수는 없는지라 눈 감고 지나가 버렸다.

예부가 이렇게 눈치 있게 군 것도 폐하의 성격이 해가 갈수록 잔혹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언을 올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폐하께선 기후가 흐려지신 것이 아니다. 여전히 사람을 쓰는 일에 능하시고 조정도 질서가 잘 잡혀 있다. 

다만 후궁에는 총비가 하나도 없었다. 폐하께선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으신다. 가끔 사냥을 하시지만 탐닉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군신들은 이러한 욕구도 애호도 없는 군왕에 속수무책이었다.

이전에 어떤 신하가 폐하께 아들이 하나 뿐인 점을 무척 염려했다고 한다. 황실에 있어 이토록 손이 적은 것은 자연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무수한 간언을 담은 상소들이 눈송이처럼 태극궁으로 향했다. 폐하께서 아들 열 명을 더 생산하지 않으면 이 천하에 면목이 없는 일이라는 듯이.

폐하께서는 비웃음만 지으셨다.

흠화 4년, 현비 이씨가 마침내 회임했다. 조야 모두 이씨가 폐하께 아들을 낳아주길 바랐다. 그런데 이씨는 난산으로 허덕이다 공주 하나를 낳은 뒤 숨을 거두었다.

그가 바로 조양(朝阳)공주다.

폐하께서 정전(正殿)인 조양전의 이름을 공주의 봉호로 내린 것만 보아도 이 공주를 얼마나 총애하시는지 알 수 있다.

조양공주는 확실히 분을 바른 듯 희고 옥으로 조각한 것처럼 아름다우며 아주 귀여웠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가여움에 그런 것인지, 폐하께선 매번 친히 공주를 부축해 주셨고, 심지어는 공주를 조정에 데리고 가 무릎에 앉히셨다. 마치 딸과 놀아주는 것이 세상 모든 국가 대사보다 더 중요한 듯했다.

처음에 여러 신하들은 이를 불쾌해 했지만, 점차 조양공주의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폐하께서 진노하시어 아무도 천자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을 때 보모에게 조양공주를 데려가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재앙도 없앨 수 있었다.

조양공주가 깔깔대며 웃으면 폐하께서는 손을 내밀어 당신의 품에 안으셨다.

그리고 폐하가 공주를 안았을 때는 반드시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조양공주는 네 살 때 식읍 1만 호를 가졌고, 노복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폐하께서는 심지어 공주를 위해 여산(骊山)에 대규모 토목 공사를 시작해 궁원(宫苑)을 지으셨다. 조양공주가 천식이 있어서 자주 온천에 다녀야 한다고 어의가 권했기 때문이다.

천하의 모두가 폐하께 지고무상의 보배로 여겨지는 사람은 조양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목은 내게 자주 말했다. "중안, 누가 장차 조양에게 장가들 복이 있을지 모르겠네."

나는 그의 뜻을 알았다. 조양과 혼인할 자가 이 천하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조양은 나날이 자랐고, 어릴 때보다 더 사랑스럽고 더 장난기가 넘쳤다. 

황궁 전체를 통틀어 그녀만이 근심걱정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종종 조양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은방울처럼 맑고 또렷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새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바로 똑똑한 한 마리 새 그 자체 아닌가?

다 큰 조양은 아목과 함께 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폐하는 아들과 딸 하나씩만을 두셨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동기였다. 조양은 자주 남장을 하고 우리와 함께 궁을 빠져나가 놀았다. 어차피 이 궁에서 감히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셋은 자주 거리의 찻집에 가서 차를 마셨고, 재주를 구경하고, 서설의 예인(艺人)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절은 즐겁고 순수하고 밝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였다. 아목이 있고 조양이 있었다.

조양이 죽었을 때 나와 아목은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진정으로 상심한 사람은 폐하였다. 하룻밤 사이에 폐하의 머리가 희게 세었다.

폐하는 홀로 조양전에 앉아 침묵하며 더 이상 아무도 상대하지 않았다.

아목은 조양전 밖에 아주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폐하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폐하께서는 조양을 유릉(裕陵)에 매장하라는 조서를 내리셨다.

그곳은 폐하 당신의 능침이었다. 모든 것이 제왕의 예에 따라 지어지는 곳이다. 매우 큰 공사라 줄곧 완성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장 아끼던 어린 딸을 묻는 데 쓰려고 했다. 조야가 소란해졌고 논쟁이 그치지 않았다. 결국 폐하는 능침 앞의 석상(翁仲)을 조금 철거하고 신도(神道)의 길이를 낮추어 간략히 하는 방식으로 공론을 잠재웠다.

조정을 열흘 동안 폐하고 백일 동안의 국상이 이어졌다. 폐하는 모든 예를 윤허하거나 윤허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양을 추도하셨다. 사실상 진정으로 조정에 나가지 않으신 것은 열흘이 훨씬 넘었다. 그 뒤로도 폐하는 조정을 그다지 돌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백관의 상주가 중서문하성에 쌓이자 태부는 참지 못하고 아목 앞에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아목은 수차례 입궁했지만 폐하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나는 아목이 매우 걱정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의 상심이 지나가고 나면 나아질 거야."

하지만 궁중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폐하의 이러한 상심은 영원히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폐하는 사람 자체가 완전히 바뀐 것처럼,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어떤 일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예전에는 냉담하고 큰 뜻을 가진 제왕이셨다면, 지금은 마음이 재가 된 것처럼 차갑고 애통해하는 아버지일 뿐이었다.

폐하의 기후도 하루하루 쇠약해졌다. 한동안은 병이 극히 중하였는데, 그때 사람을 보내어 서량의 특사를 부르셨다.

서량은 천조의 통치 하에 있는 가장 기이한 속국이다. 나라가 작고 국력은 약한데다 사막의 고통도 여러 차례 겪은 곳이다. 다른 번국들은 모두 왕자를 상경에 보냈다. 명목상으로는 중원의 예의를 배우러 보내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볼모였다. 하지만 서량은 유일하게 볼모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서량 국주는 아주 오만하고 무례하여 자주 조공을 하지 않았다. 

기이한 것은, 폐하께서는 서량을 몹시 후대하신다는 것이다. 서역을 정벌하여 만방(万邦)을 평정하셨지만 오직 서량만을 남겨두셨다.

예전에 궁중의 노인이 중얼거리던 말을 희미하게 들은 적이 있다. 이는 명덕황후(明德皇后)의 연고일지도 모른다고.

아목도 나도 명덕황후가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엄청난 금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명덕황후는 폐하께서 동궁이셨을 때의 본처(原配)이다. 애석하게도 박명하여, 원경 12년, 폐하께서 등극하시기 전에 병으로 훙서하였다. 폐하께서는 이 요절한 태자비에게 별로 정이 없는 것 같았다. 흠화 9년이 되어서야 예부의 거듭된 거론에 마지못해 조서를 내려 명덕황후로 추봉하셨다. 20년이 지난 이 추봉은 날림으로 처리되었다. 명덕황후는 정릉(定陵)에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폐하께선 황후의 예로 능침을 중건하라는 조서를 내리지 않으셨고, 당신의 만 년 후에 이 추봉된 황후를 함께 유릉에 안치하라는 조서도 내리지 않으셨다.

황후로 추봉하기 전이든 후든, 폐하는 한 번도 이 요절한 본처의 제사를 지내지 않으셨다. 

궁중의 소문에 따르면, 폐하는 이 본처를 무척 싫어하셨다고 한다. 아마 화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민족(番邦) 여자를 태자비로 책봉하여 줄곧 황실의 수치로 여겨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서에도 몇 줄 적혀 있지 않았고, 불과 10여 자로 이 명덕황후의 일생을 기록했다.

아목은 이 일이 금기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했다. 언젠가 조양공주가 어디서 났는지, 득의양양하게 호복(胡服)을 입고 폐하께 간 일이 있다. 결국 폐하는 노발대발하여 조양 곁의 이들을 전부 곤장을 쳐 죽이라 하셨다. 깜짝 놀란 조양은 울다가 기절했고, 너무 놀란 탓인지 열흘 가까이 앓았다. 폐하께선 당연히 후회막급이라 조양이 완쾌될 때까지 곁을 지키셨다.

진 귀비는 공주를 부추겨 호복을 입게 했다는 이유로 폐출되었다.

내가 아목과 함께 조양을 보러 갔을 때, 늙은 보모가 우리에게 몰래 알려주었다. 폐하께서는 명덕황후와 닮은 사람을 가장 기탄하신다고. 진 귀비는 공주를 부추겨 호복을 입게 했으니 그 마음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고.

아목은 용감하게도 보모에게 물었다. "그럼 아황(阿凰)은 명덕황후와 닮았나?"

 

조양의 유명이 봉황(凤凰*)이라 아목은 그녀를 아황이라고 불렀다.

*봉황의 凤fèng과 소풍의 枫fēng은 발음이 같음

보모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조금도 닮지 않으셨습니다. 명덕황후가 어찌 공주만큼 아름답겠습니까."

나도 닮았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민족 여자 중에 아름다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보모가 말을 이었다. "명덕황후는 피부가 희고 몸집이 작고 가녀렸습니다. 영리하긴 했지만 중원 여자들처럼 꽃과 옥 같은 용모는 아니었지요." 그러더니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0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보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아목을 보았다. 그는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폐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양에게 화를 내신 일이었다.

아목이 말한 적 있다. 이 세상에 폐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것은 조양 하나 뿐이라고. 

나는 속으로 묵묵히 찬성했다. 

하지만 조양은 죽었다.

조양이 죽은 뒤, 정무에 대한 폐하의 권태는 나날이 커졌고 건강도 나날이 나빠졌다. 조정의 일에 질린 동시에 삶 자체에 질린 것 같았다. 폐하께서는 더 이상 사냥도, 연회도 즐기지 않으셨다. 보통은 홀로 전각에 계셨다. 술을 마시지도 않고 여색에 탐닉하지도 않으셨지만 신체는 나날이 쇠락해 갔다.

조양이 폐하의 삶의 모든 활력을 가져간 것 같았다. 폐하는 머리가 희게 셌고 마음도 이미 죽은 것 같았다. 나는 이 정도로 상심할 수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목도 나도 조양의 죽음에 무척 비통해 했지만, 폐하의 상심에는 만 분의 일만큼도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직접 입궁하여 폐하를 만류했다. 아버지의 건강도 줄곧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러 해 동안의 출전으로 내상이 셀 수도 없이 많았고, 병 때문에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셨지만, 입궁을 고집하셨다. 

집안 사람들은 아버지의 뜻을 꺾을 수 없었고 다만 아버지가 가마(辇)를 타고 입궁하게 했다. 전각의 수많은 내시와 궁인들이 물려졌고, 나만이 아버지가 폐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도록 부축했다. 아버지의 온몸이 덜덜 떨리는 것 같아 나는 아버지를 부축하는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내가 손을 놓으면 아버지는 금방 쓰러지실 것이다. 내가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토록 허약하시니 나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었다. 폐하는 어쨌든 아버지를 대하시는 것에 남달랐다. 폐하께서는 직접 손을 뻗어 아버지를 일으켜 주려 하셨다.

 

아버지는 숨을 조금 몰아쉬며 폐하의 손을 잡았다. 평소에 내가 아목의 손을 잡는 것처럼. 그리곤 말씀하셨다. "오랑(五郎), 그녀는 이미 죽었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말소리도 무척 가벼워서 나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폐하는 몸 전체가 굳어 버린 듯했다. 나는 폐하의 희끗희끗한 귀밑머리와 탁한 눈을 보았다. 그분은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 살짝 떨고 계셨다. 폐하께서 언제 이렇게 쇠락한 노인이 되신 거지?

 

아버지는 다시 숨을 헐떡이며 말씀하셨다. "30년 전에, 그녀는 이미 죽었습니다."

 

아버지의 눈 밑에 눈물이 맺힌 것 같았다. "오랑, 정신 차리십시오. 그녀는 오래 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나는 폐하의 그러한 안색을 본 일이 없다. 그분은 늘 아버지를 너그러운 어투와 즐거운 얼굴로 대하셨는데, 지금은 얼굴 근육 전부를 일그러뜨려 거의 흉악한 표정에 가까웠다. 폐하께서 아버지의 옷섶을 움켜쥐었다. 나는 폐하의 손등에 선 핏대를 보았다. 그분의 극히 사나운 음성은 쉰 목소리와 같았다. "허튼 소리!"

 

아버지는 숨이 턱 막히도록 떠셨고, 나도 감히 숨소리를 내지 못했다. 전내에는 아버지의 망가진 풀무 같은 헐떡임만 들렸다. 폐하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그분은 심지어 웃음까지 지으셨다. "아조, 자네도 알잖나. 그녀는 서량으로 돌아갔다네. 우리를 다 속여 넘겼어. 자네 같이 총명한 이도 그녀에게 속았군 그래."

아버지는 기침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폐하……."

아버지의 눈빛에는 희망 대신 비탄이 가득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조양공주는 그녀의 딸이 아닙니다. 공주도 그녀의 모습을 조금도 닮지 않았지요. 폐하께서도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공주는 현비 이씨 소생이고, 태자비는 3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요……. 제가 10년 전에 보러 갔을 때 이미 그녀의 무덤에 푸른 풀이 길게 자라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폐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본 일이었다. 커다란 눈물 방울이 소리도 없이 흘러, 그분의 가슴 앞 옷자락에 떨어졌다. 가슴 부근에는 세밀한 자수가 놓여 있는데, 그 밝은 눈물이 용의 머리에 맺혀 떨어질 듯 말 듯했다. 아버지는 달래듯이, 또 위로하듯이, 또 가엾게 여기듯이 폐하의 두 무릎을 안았다. 폐하는 마침내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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